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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어떻게 조직의 성과를 갉아먹는가?

토이판다 2024. 4. 17. 12:12

침묵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

 

 

24년 4월, 대학원에서 오후 수업 대신 세미나가 열렸고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윤석진 원장님께서 오셔서 강연을 해주셨다. 강의 내용은 KIST의 역사와 역할,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사와 미래, 원장님의 리더십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과학기술 관련 대학원에 다니고 있지만 기초과학 연구와 관련된 내용은 잘 몰랐는데, KIST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연구원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떻게 조직 구조와 성과 제도 등의 개편 성과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무척 인상깊었다. 원장님께서는 나의 아버지 세대이신데도 불구하고 원장으로 재임하시는 동안 연구 성과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들을 실행하셨고 실제 숫자로 성과가 나타난 것이 흥미로웠다. 누구나 계속해서 학습하고 실행하면 나이와 아무런 관계 없이 혁신을 달성할 수 있으며, 나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계속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강의 말미에 '두려움 없는 조직'이라는 책을 조직장들에게 선물했다고 말씀하셨기에 나도 그 날 바로 주문해서 읽어보았다. 

 

 

침묵은 어떻게 조직의 성과를 갉아먹는가?

 

 

책을 주문할 때는 목차도 읽어보지 않았기에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몰랐으나, 책을 읽고 나니 표지에 있는 카피가 책의 내용을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직원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상식 선에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심리적 안정감은 왜 중요할까? 어떤 사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거나 본인의 주장을 전개하더라도, 혹은 그로 인해 실패하더라도 동료들이 지지해줄 것이라는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마음이 편하니까 일이 잘 되는 수준을 넘어서서, 누구나 어떤 일에도 본인의 견해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이는 1차적으로 침묵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를 막을 수 있으며, 2차적으로는 혁신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이 전문가들이며, 하나하나 통제해야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모두에게 자리잡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회의 자리에서 팀원들이 어떤 의견을 내도 면박만 주고 매사에 부정적인 피드백만 주면서, 왜 좋은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냐고, 왜 아무도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내지 않냐고 질책하는 것은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조직에 심리적 안정감이 형성되어야 팀원들이 문제를 제기해도 모욕당하거나 무시당하지 않고, 질책당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게 된다.

 

팀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팀워크가 좋을수록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기꺼이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실수 발생 횟수 자체는 높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수를 공유함으로써 그 팀은 문제를 빠르게 개선하고 더 큰 혁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실수는 회고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만약 실수를 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문화가 만연한 경우, 조직원의 침묵은 단순한 실수에서 그치지 않고 매우 심각한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직원이 업무에서 잘못된 내용을 파악했으나 괜히 말해 봐야 부정적인 피드백만 들을 것 같아서 침묵한다면? 이로 인해 항공기가 추락하거나 대형 은행이 한 순간에 파산할 수도 있다.

 

 

책에서는 직장에서 의견을 제시할 때 작동되는 암묵적 규칙을 소개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거나 침묵을 지킬 때 작동되는 암묵적 규칙

1. 상사가 관여한 업무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마라

2.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말하지 마라

3. 상사의 상사가 함께 있을 때는 문제를 제기하지 마라

4. 상사의 체면이 깎이지 않도록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부정적인 언급을 피하라

5. 문제 제기는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조직에는 혹시 이런 암묵적 규칙이 있지는 않은가?

우리 조직에서는 누구나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가?

 

위와 같은 암묵적 룰을 깨고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토대 만들기 - 참여 유도하기 - 생산적으로 반응하기'라는 세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1. 토대 만들기 : 실수에 대한 프레임을 바꾸고 업무에 임하는 직원들의 인식 자체를 바꾼다.

2. 참여 유도하기 : 직원들에게 예의 바르고 구체적으로 질문하여 자연스러운 참여를 이끌어낸다.

3. 생산적으로 반응하기 : 근무 환경 조성은 구성원의 문제 제기에 '리더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성공하는 조직의 리더라면 구성원의 문제 제기에 존중을 표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 향후 대응 방향까지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최고의 조직은 어떻게 혁신을 거듭할까? 픽사의 사례를 살펴보자.

 

픽사의 공동창업자 에드윈 캣멀은 성공의 열쇠로 솔직함을 꼽았다. 솔직함이 기업의 문화가 된 조직에서는 구성원이 굳이 침묵할 필요를 못 느낀다. 자신의 의견이나 비판적인 생각을 털어놓지 못해 입이 근질거리기 때문이다. 픽사의 직원은 모두 비평가가 된다.

 

픽사에는 잘 알려진 브레인트러스트(Braintrust)라는 일종의 의견 교환 과정이 있다. 몇몇이 그룹을 지어 한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점심을 먹고 제작 중인 영화를 관람한 후, 솔직한 감상평을 들려주는 것이다. 이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브레인트러스트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평가 내용은 반드시 건설적이어야 한다. 둘째, 브레인트러스트에서 나온 의견은 단지 제안일 뿐 확실한 처방이 아니다.

 

제작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실패 정도야 귀여운 애교 쯤으로 흔쾌히 받아들여진다. 단, 픽사가 인정하는 실패에는 뚜렷한 원칙이 있다. 개발 단계에서는 감독에게 기본급여가 지급되지만 추가 생산비용은 엄격히 제한된다. 이처럼 픽사는 두려움과 실패를 제도적으로 분리하려는 노력을 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책은 다 읽은 후에도 회사 책상 위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꽂혀 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물론 자의적인 선택이거나 다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 괜찮을 수 있으나, 업무적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이 있는데도 그것을 삼키는 일이 장기간 반복되면 상당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일이란 생계 수단이기도 하지만, 나의 전문성을 발휘함으로써  성과를 달성하고 심리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고 단지 주어진 의견만 받는다면 어떨까? 

 

이처럼 침묵은 개인을 병들게 하고, 조직도 병들게 한다. 회사는 조직원 개개인을 전문가로 정의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 성과를 내고자 한다. 그런데 그 전문가들이 어떤 의견도 내지 않고 그저 순응한다면 혁신은 일어날 수 없다. 회사는 당장은 굴러가겠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지금 나의 회사는 어떤가? 나는 옳지 못한 피드백으로 동료들을 침묵하게 하는 사람일까? 또는 나 스스로 침묵하는 사람일까? 어떤 환경을 만들고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건강하게 일하며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많이 고민이 들게 하는 책이다.


진정한 실패는 실패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실패는 실패하는 게 두려워 온전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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